전쟁이 재미 있다?
전쟁이 재미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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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문순태 본지 발행인 광주대 교수
   

나는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 여론을 그대로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그들의 이야기야 말로 여과를 거치지 않은 생생한 여론이라고 할 수가 있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동안 카라디오에서는 미군기의 아프가니스탄 폭격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택시 기사는 갑자기 라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요즘에 손님들은 정치뉴스가 나오면 라디오를 끄라고 난리고, 아프간 사태 만 나오면 크게 틀어라고 합니다. 손님들이 그러는데, TV뉴스에서 아프간 사태를 보는 건 만화처럼 재미있다고들 헙니다."

전쟁이 무섭지 않고 재미있다? 나는 택시기사의 말에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아프간 사태를 보도하는 TV뉴스는 전쟁의 비극성과 잔혹 성보다는 마치 컴퓨터게임을 보는 것처럼 감각적이다.

걸프전 때도 그랬다. 미국의 압도적으로 우세한 화력을 첩보위성의 위력과 함께 반복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전쟁의 참담함보다는 감각적 흥미만을 자극시키고 있다. 깜깜한 밤하늘을 가르는 무수한 탄화(彈火)는 마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같은 보도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 이제 이 땅에서 휴머니즘은 완전히 죽어버렸구나 하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양쪽 다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광기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채 굶주리는 아프간 어린이들의 처참한 모습과 절망적인 피난행렬은 전쟁의 화려한 불꽃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17일 현재 10일째 계속되는 가공할 정도의 폭격으로 아프간은 초토화되고 있다. 오폭까지 겹쳐 지금까지 6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물론 콧대높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은 미국을 이해한다.

허나 얼굴없는 적에 대한 보복과 응징을 언제까지 계속 할 것인가. 보복적 폭격의 강도가 높을수록 이슬람국가들의 반미시위는 더욱 격화되고 탈레반의 항전의지는 오히려 꺾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지금 소리도 없는 백색가루의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가.

이같은 세계적 혼돈 속에서도 자국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일본을 보고 더욱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회다 싶게 헌법까지 무시하고 대규모의 자위대를 파견하는 일본의 속셈이야 말로 비인간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이제 일본은 아프간사태를 통해 자위대가 일본군으로 탈바꿈하는 기회로 만든 것이다. 군비지출이 세계2위에다 최첨단 군장비보유가 3위인 일본군의 돌출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에서는 말 한마디 없으니 통탄스럽다.

암튼, 이미 전쟁은 브레이크가 풀린 상태다. 아무도 미국을 말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슬람세계와의 기나긴 전쟁의 늪으로 빠져 들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샤무엘 헌팅턴이 주장한 문명의 충돌로 비화될까 하는 것이다. 종교간의 충돌로 확전되는 것은 막아야한다. 그것 역시 미국이 결정할 문제이다.

지금 미국은 크나큰 시련을 맞고 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최강대국으로 남을 것인가 하는 시험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미국의 입장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어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에 매 몰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번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휴머니즘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폭탄과 식량을 함께 투하하는, 병주고 약주는 식의 미국식 휴머니즘은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 가치와 인도주의정책이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 문제에 패권주의나 우월주의정책을 포기해야한다.

허나, 미국의 브레이크가 풀린 보복폭격과 비인간적 모습을 탓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전쟁을 보는 우리의 입장이 더 큰 문제다.

"아프간을 쑥대밭을 만드는 한이 있어도 철저히 응징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프칸사태를 보도하는 TV를 보면서 전쟁 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야 말로 비인간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21세 기에 들어 휴머니즘의 참담한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아프간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정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수 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휴머니즘의 부활인 것이다.

/문순태 본지 발행인. 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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