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 사장이 구두방 아저씨가 된 이후
건설회사 사장이 구두방 아저씨가 된 이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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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보다는 내 마음을 손질 합니다

매 순간 높이가 달라지는 인생의 곡선. 그 곡선이 위를 향하면 우리는 흔히 '성공'이라 말하고 아래를 향하면 '실패'라 한다. 그렇다면 김병하(52) 씨의 인생은 지금 어디쯤일까. 그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으로 봐선 곡선의 위치가 아래쪽이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또다른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기에 결코 불행하지 않다.

광주시 북구 두암동 미라보맨션 입구 앞에 한평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있다. 김씨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신다가 불편해서 들고 온 신발들을 말끔히 수선해 주고 있다. 일감이 밀려서인지 들어 설 틈도 없이 구두가 수북히 쌓여 있다. 그러나 의문은 곧 풀린다.

"나쁘게 말하면 일하는 게 더딘 것이고, 좋게 말하면 꼼꼼히 수선해 주기 때문일꺼요"라며 말문을 여는 김씨는 다른 구두방에서 세 켤레 손질할 시간에 겨우 한 켤레 손질할 정도다. 솜씨가 오히려 인기를 얻고 있다. 인근 동네 주민들 뿐만 아니라 계림동, 일곡지구 등에서도 소문 듣고 먼 걸음 마다하지 않고 발품 팔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이 양반 참 솔직해요. 못 고치는 부분은 처음부터 안된다고 말하니 오히려 믿음이 생긴다니까요" 고객을 위한 성실함과 진실함. 이는 김씨가 인생의 쓴맛을 통해 얻은 소중한 열매이기도 하다.

IMF 이전엔 어엿한 건설업계 사장님
부도로 전재산 잃고 절망 속 배운 수선일


4년전만 해도 김씨는 구두방 아저씨가 아니었다. 120여명의 직원 생계를 책임지는 건설업계 '사장'이었다. 어디가나 대접받는 사람이었고, 끼니 걱정 정도는 하지 않고 살아가는 '여유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불어닥친 IMF 경제난. 김씨도 그 한파를 비껴갈 수 없었다. 두차례에 걸친 부도로 인해 그는 모든 재산을 잃었다.
"부도 나기 직전에 큰 딸이 약혼식을 했는데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서 자살할 생각도 했어요" 회사부도가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어진 김씨는 극약을 사들고 죽을 생각으로 잠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살아야 할 이유도 '가족'이었다. 그리고 '무얼 하든지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 한 제화회사 사장으로부터 '구두 수선을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장 소리 듣던 사람이 구두 수선한다는 게 쉽게 받아들일만한 일은 아니었죠" 그래도 그는 서울 구두 공장에서 6개월 동안 열심히 수선 일을 배워 구두방 간판을 내걸었다.

"내가 이 동네에서 28년을 살았는데 왜 안 부끄러웠겠습니까?" 눈만 돌리면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자존심 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더구나 그럴 때마다 자꾸 옛날이 그리워져 속으로 신세 한탄도 많이 했다고 한다.

꼼꼼한 솜씨로 이웃동네까지 입소문
"또다른 인생의 맛…행복합니다"


그러나 이런 심적 고통도 잠시. '한가지에 집념해 보자'는 의지를 갖고 사람들의 구두를 정성껏 수선하면서 그는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넉넉한 혼수품 하나 제대로 못해주고 시집 보내야 했던 딸이 사위와 함께 좁은 구두방을 찾을 때, 갑작스런 부도로 피아노 전공을 포기했지만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서 그는 또다른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누가 찾아와도 구두약 때문에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있는 앞치마, 날카로운 연장 때문에 생긴 상처를 감추지 않을 만큼 김씨는 "내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주민들에게 '어려운 사장님'이 아닌 친근한 '구두방 아저씨'로 기억되는 김씨. 그는 오늘도 늦게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오후 8시가 넘은 시각까지 캄캄한 밤 불 밝히고 구두방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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