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떠나요 시골로....
우리 떠나요 시골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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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그별 아래...'
얼마 전에 참석한 캠프에서 '제주도의 푸른 밤'이라는 이 노래를 들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름다운 노래였다. 부르는 사람이 잘 하기도 했지만 노래의 내용이 캠프의 취지와 맞아떨어졌고,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떠난다'는 느낌을 자극해서였을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받으며 앵콜을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떠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움, 설레임, 새로움... 필자의 경우에는 두려움이 가장 앞서는 것 같다. 광주 토박이로 그것도 북구지역에서 떠난적이 없어서인지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 그것은 나와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어떤가.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 그 자체로 아무 일도 못하는 것.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 '때'가 서서히 다가옴을 스스로 느낀다. 떠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가진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리라. 떠나는 것 못지 않게 변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어렵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듯 하다.

화순 동복 가수리 만수동에 집 한채가 지어지고 있다. 원래는 장흥 유치에 있던 집. 50년 동안 자신을 든든히 받추어주던 곳이 탐진댐 건설로 물에 잠긴다. 새 주인을 만나 화순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 새 주인은 바로 고일석(49)님.

17년 기다려준 아내 덕분
더디더라도 우리 함께
생태적 삶 "이제 결심했어!"


2000년 1월, 그는 30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는 보험회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하던, 회사원에게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회사에 충성하게끔 세뇌시키는 사람이었다. 하는 일에 인정도 받고 큼직한 일도 새로 맡게되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엘리트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실상사 귀농학교를 들어간다 했을 때 직장 안에서는 괴담이 떠돌았다 한다.

죽을 병에 걸려 불교에 귀의하러 절에 들어간다느니,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느니... 근거없는 스캔들에 휩싸인 연예인의 마음을 이해하겠더란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이해를 못해 무슨 일이 있는지 솔직히 말해달라고 하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명문학교를 나오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한점 흐트러진 모습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던 사람이 그것도 시골생활이라고는 해본적이 없는 광주 토박이가 농사지으러 시골에 내려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나도 궁금했다. 그렇게 도시에서 잘 적응하고 잘 살던 사람이 왜 시골로 내려가는지.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귀농자들은 도시의 경쟁 속에 상처입었거나, 천성이 유순해 적응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어린시절 시골생활의 향수를 잊지 못해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 전부였다. 그런데 고일석님은 그중 하나도 해당되지 않았다. 귀농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내 때문이라고 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 '덕'이라고 했다. 17년여 전부터 아내 박주영(47)님은 시골로 내려가자고 했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시골이라니, 농사라니. 해야할 일은 이리도 많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이루어야 할 일도 많았다. 쌀이야 사먹으면 되고 좋은 공기는 주말이나 휴가 때 놀러가면 되는 일이었다.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아내인 박주영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퉁명스런 반응을 보아도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 말해보고 저렇게 말해보고 했다. 그렇게 15년이 걸렸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서서히 남편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함께 걷는다. 요즘에는 남편이 더 신나 한다. 결혼생활 22년중, 귀농을 결심한 최근 2년동안에 제대로 남편 노릇 하는 것 같다고 고일석님은 웃어 보인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다운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수록, 도시의 생활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지속 가능이니, 생태적이니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시 안의 경쟁시스템은 정말이지 '사람 잡는' 것이다. 자연으로 귀의해서 공존 더 나아간 상생의 삶을 사는 것. 그러나 혼자는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과 같이, 더디더라도 같이. 놓치기 쉬운 것을 보여준 고일석, 박주영 부부의 모습은 소신껏 생태적 삶을 살아간 니어링부부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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