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영세민 위한 아파트 맞습니까?
<르포> 영세민 위한 아파트 맞습니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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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촌동 시영3단지 주민들의 하소연>

"차라리 벼룩의 간을 떼어 먹으라지. 이게 영세민들 돕자는 아파튼가?"
한 주민이 그동안 마음속에 삭혀뒀던 울분을 토해내자 주변 사람들 모두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에게 단돈 500만원만 있다면 여기서 정말 나가고 싶어요"
"없는 사람들이라고 우려 먹는 것이여, 뭣이여"
"우리는 12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돈 들어가는 것 보면 60평에 살고 있는 것 같다니까"
어느새 몇 사람의 대화는 점점 몰려드는 주민들 속에 수군거림을 넘어 외침으로 변하고 있었다.

12평집 하루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
관리비 다른 곳 비해 비싸고


광주시 서구 쌍촌동 시영아파트 3단지. 영세민 500여 세대가 둥지를 튼지 벌써 10년째다. 모두들 '내일'보다 '오늘'을 생각하기에도 빠듯한 생활에 이웃간에 얼굴 마주칠 시간도 없지만 그나마 잠깐 마주치면 하소연에 가까운 안부 인사가 오간다.

오늘의 이야깃거리는 한 주부가 9월분 관리비 명세서를 갖고 나오면서 시작됐다. 공동전기 사용료가 5,850원이 나온 것. 개별 전기료가 1만원이 조금 넘는 형편에 공동전기료가 5천원이라는 것은 이들의 상식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한 가정에 최소 5천원씩 5백가구의 공동전기료를 합하면 무려 2백50만원에 이른다.

"이 숫자가 도대체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관리사무소는 설명 한번 안해줘요"
관리사무소는 계량기 수치대로 고지서를 발부한다지만, IMF 구조조정 등으로 각 동에 있던 관리실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하는 등 예전에 비해 소비가 줄어든 것 같은데도 여전히 전기료가 많이 나온 것에 대해 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래저래 관리비는 2만원이 넘어가고 이를 제때 감당하기 힘든 영세민들은 한달, 두달 관리비가 밀리고 있다.
가끔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항의하는 주민들도 있으나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렇게 불만 많으면 이사 가면 될 것 아니냐"는 대답뿐. 하지만 이 보금자리마저 없으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바로 이곳 주민들이기 때문에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다.

10년 넘은 엘리베이터는 고장 일쑤
항의해도 "불만있으면 이사 가라" 답변뿐


그렇다고 관리비를 받아간 만큼 이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관리비 많이 받아가면 뭐합니까? 싱크대 나사 하나 빠져도 우리 돈으로 고쳐야 하는데".
특히 엘리베이터는 최대의 골칫덩어리다. "운행료는 제때 받아가도 10년이 넘도록 교체 한번 안해서 일주일에 두세번 고장은 당연시 됐어요"
며칠전엔 어린이가 고장난 엘리베이터에 갇혔지만 비상벨이 손에 닫지 않아 울다가 지나던 주민들이 발견하고 조치를 취한 적도 있었다.

스피커 고장을 고치는 것도 주민들의 몫이다. 때문에 지난 13일 한 모씨는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보일러 배관공사 때문에 하루 단수가 됐지만 스피커가 고장나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방송이 안들려도 현관 입구에 공고문을 붙였을텐데 왜 그걸 못봤냐"며 오히려 한씨의 부주의를 지적했다. 그러나 아침 일찍 나가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오는 한씨 눈에 A4 한 장 크기의 안내문이 보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영세민 아파트인데 요구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 한씨는 관리사무소와의 입씨름도 포기하고 산지 오래다.

"올 겨울은 또 어떻게 날지…"

겨울이 되면 주민들이 '영세민'이라는 이유로 느껴야 하는 자괴감은 더욱 크다. 돈이 조금 더 절약된다는 이유 때문에 중앙난방을 사용하고 있는 이곳은 '따뜻함'을 모르고 산다. 모든 가정에 전기담요는 겨울을 나는데 필수용품이 됐을 정도다.

또, 겨울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뻥 뚫린 복도는 사람들의 통행이 힘들 정도로 눈이 뒤덮인다. 주민들은 "창이라도 달아주라"고 요구했지만 관리사무소은 "건물 구조상 힘들다"는 이유로 방치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3단지와 같은 구조로 지어진 일반 아파트 2단지 복도 난간은 모두 창을 설치했다. "결국 돈 때문에 못 해주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역시 '영세민'이라는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아요"라며 치밀어오르는 화에 울먹이기까지 하는 주민들. 가난하고 힘없는 영세민이라 해서 관리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만 있으나 이들은 한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입주자 대표회의나 주민 협의체 등이 없어 주민들의 목소리가 하나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디 뭔놈의 회의여" 이들은 몇시간 회의하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생존의 방법이다. 때문에 이들의 한숨 섞인 목소리는 어느 곳도 수용하지 못한 채 메아리쳐 다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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