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미국적 시각을 강요하는 한국언론의 '테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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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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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이 서울취재팀장
미국적 시각을 강요하는 한국언론의 '테러리즘'

사건보도의 골간은 크게 실태-원인-대안 3가지로 나뉜다. 실태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기록이고, 원인은 '왜'에 대한 탐색이며, 대안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망라한 최적의 분석이라 할 것이다.

한국언론의 미국 테러보도는 미국보다 더 흥분한 상태에서 오는 실태의 오류, 원인의 부재, 전쟁으로 몰아가는 대안의 획일적 보도 태도가 지적되고 있다.

먼저 사실 전달에 있어서 관점의 객관성을 잃고 있다. '미국이 공격당했다'(조선일보)거나 '미국이 테러 당했다'(중앙일보)는 '미 동시다발 테러 대참사' 제목에 비해 매우 주관적이다. '미국이 당했다'는 표현은 '우리의 우방인'이라는 말이 앞쪽에, 당했으므로 '갚아야 한다'는 말이 뒤쪽에 생략된 것처럼 읽힌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규정하여 미국적 시각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CNN이나 미국 신문과 방송, 통신사들의 보도를 통역 번역하여 천편일률적으로 재생산하는 부분은 그 한계를 인정할 수 있으나, 추측보도와 오보, 편파적 논평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망·실종자의 수. 세계무역센터의 상주인구에 근거하여 한때 1만명(대한매일 1면 헤드라인)에서 2만명까지, 현재는 5천여명으로 추측이 난무했다. 피츠버그에 추락된 항공기를 '미 공군이 격추'(조선일보 12일 9면헤드라인)했다는 오보도 나왔고, 국내 반응을 빗대 '3차대전'까지 발전하기도 했다.

파업보도 북한관련 보도처럼 미국의 피해나 슬픔, 그리고 응징은 일주일 동안 대부분의 신문이 12∼20면(가로37cm 세로 6cm 통단제목)씩을 할애할 정도로 넘쳐났지만, 정작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인색했다. 있었으나 소수의견처럼 묻혔다. 미국이 아랍인민의 이익과 복지를 석유이권과 이스라엘 지지에 종속시켰으므로, MD체제강행과 교토의정서 거부, 남아공 인권회의 철수로 이어지는 부시의 오만한 고립주의가 '자살테러'라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가. 원인에 대한 성찰의 부족은 대안에 대한 편협함을 낳고 있다.

중앙일보는 "진주만 공격에 대한 대응처럼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야한다"고 키신저의 입(14일)을 빌어, 조선일보는 '뉴욕테러는 아프간 응징을 정당화 할 것이다'고 사설(17일)을 통해 전쟁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전쟁수준 보복선언' '모든 수단동원 응징'이 많은 신문들의 머리기사를 장식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테러에 테러로 대응을 자제하는(포르투칼 엑스프레소) 목소리나 무차별 폭력은 테러분자에 대한 패배(영국 인디펜던트), 섣부른 응징은 더 큰 부정의(스페인 엘패)라는 유럽의 지적, 나아가 테러를 막는 방어는 전쟁이 아니라 정의라는 깊이 있는 울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도에 따르면 전쟁은 필연처럼 보인다. 한국언론을 통해 미국 테러를 슬픔으로 체화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므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전쟁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가 미국테러에 대해 드러내놓고 고소해 할 일은 아닌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의 경우도 같을 것이다. 한국 언론이 보도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냉정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무시하면서 두 외국을 피아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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